많이 버는 사람은 집안일을 덜 해도 되는가
세 현자는 '기여한 만큼'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물리친 것은 한 잣대에서 앞선 것을 모든 몫으로 넓히는 일이었다
사안
10월 2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글쓴이의 말로는 성과급을 합친 그의 연봉이 8억 원쯤이고 배우자는 4천만 원이다. 스무 배 차이다. 퇴근 시간은 비슷하고 둘 다 바쁜데 집안일까지 반반 나누는 게 맞느냐고 그는 물었다. 댓글 대부분이 그를 나무라자, 그는 승진을 앞두고 야근 시간으로 고과를 받는 시기라는 사정을 덧붙였다(뉴스1, 2026년 10월 30일).
기여한 만큼 가져간다는 원리는 우리가 회사와 시장에서 날마다 받아들이는 정의다. 성과급이 그렇고 승진이 그렇다. 그 원리가 현관문 안으로 들어오면 왜 불편해지는가. 그를 나무라는 것만으로는 물음이 풀리지 않는다. 그의 물음에는 두 가지가 엉켜 있다. 하나는 집 안에도 기여에 따른 몫이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기여를 무엇으로 재느냐는 것이다. 앞의 물음에 "집 안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답하면, 집안일을 도맡아 온 사람의 기여도 함께 지워진다. 뒤의 물음을 건너뛰면 연봉이 저절로 잣대가 된다. 이 글은 두 물음을 갈라서 현자들에게 가져간다.
세 현자에게 물었더니
이 물음을 지혜의 원탁에 올렸다. 아리스토텔레스, 맹자, 다산 정약용이 앉았고 문답은 세 차례 오갔다. 원탁의 아리스토텔레스(AI)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우애론을 근거로, 정의에서는 비례가 먼저지만 사랑에서는 같은 몫이 먼저이고 부부는 이익을 나누는 동업이 아니라고 했다. 원탁의 맹자(AI)는 「공손추 하」의 "천하에 존귀한 것이 셋"이라는 구절과 측은지심을 근거로, 재물이라는 한 가지 척도로 집안의 노고를 깎아내릴 수 없다고 했다. 원탁의 다산(AI)은 "높일 때는 같이 높이고 낮출 때는 같이 낮춘다"는 예론을 근거로, 성과급 액수로 집안의 권리와 의무를 나누면 가정이 '성과에 따른 등급제'가 된다고 했다. 결론은 셋이 같았다. 집 안에서는 계산을 멈추라는 것이다. 마지막 문답의 처방, 오늘 저녁 서로의 가장 고단했던 일을 묻고 들어 주라는 말까지 거의 같았다.
그런데 원전을 열면 이 합의는 그대로 서지 않는다. 실제의 세 사람은 모두 기여에 따라 몫을 달리하는 비례를 받아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부 사이에도 비례가 있다고 썼고, 재산이 나라의 관직을 다툴 정당한 근거의 하나라는 것도 인정했다. 맹자는 물건값이 열 배, 백 배 다른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공을 보고 먹인다"고 했다. 다산은 일한 날수대로 곡식을 나누고, 남의 힘을 덜어 준 사람의 하루는 열흘로 적어 주자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맹자가 물리친 것은 비례가 아니라, 한 가지 잣대에서 앞섰다는 사실을 모든 몫으로 넓히는 일이었다. 재산은 재산이 관련된 몫에는 근거가 된다. 그것을 들고 관련 없는 몫까지 가져가려 할 때 두 사람은 각자의 말로 막았다. 다산은 거기서 더 나아갔다. 그는 여전제에서 땅을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몫의 근거에서 빼고, 몫은 해낸 일에서만 나오게 했다. 원탁의 쉬운 결론 뒤에서 원전이 던지는 물음은 계산을 하느냐 마느냐보다 날카롭다. 무엇으로 무엇을 잴 것인가.
"비례대로라면 더 버는 쪽이 덜 맡는 게 정의 아닌가" — 아리스토텔레스
질문자는 두 번째 물음에서 일부러 글쓴이 편에 섰다. 그가 밖에서 버는 돈도 결국 가족을 위해 쓰이니, 비례적 평등대로라면 더 기여한 쪽이 집안일을 덜 맡는 게 오히려 정의롭지 않으냐고. 원탁의 아리스토텔레스(AI)는 반론의 설득력을 인정하고는 곧 반박했다. 비례적 평등의 적용 범위를 정밀하게 구분해야 하고, 경제적 성과가 상대의 가사 노동을 낮게 보거나 자기 가사 의무를 면제받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원탁의 다산(AI)은 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비례적 평등은 공적 영역의 기여에는 타당할지 몰라도 가정이라는 사적 공동체에 그대로 대입하기엔 위험하다고.
실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선을 긋지 않았다. 그에게 집은 정의가 멈추는 곳이 아니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12장 끝에서 그는 남편이 아내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이 "그들 사이에 무엇이 정의로운가"라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다만 친구 사이의 정의는 낯선 사람이나 우연히 함께 가는 길동무 사이의 정의와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집 안에도 정의가 있고, 그 정의는 시장의 정의와 모양이 다르다는 말이다.
주해 1 · 집 안에도 정의가 있다(『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12장 끝 · 8권 1장)
-
풀이8권 1장의 "우정 안에서는 정의가 필요 없다"만 떼어 읽으면 원탁의 결론(집 안에서는 셈을 멈추라)과 맞아 보인다. 그러나 같은 문장은 정의로운 사람에게도 우정이 더 필요하다고 이어지고, 8권 12장 끝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곧장 정의의 물음으로 놓는다. 그의 뜻은 우애가 정의를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우애 안의 정의는 낯선 사람 사이의 정의와 다른 모양이라는 것이다.
-
학계의 한 해석휴담 지식 노트가 정리한 학계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과 달리 우애를 정의가 자라는 토양으로 보았다고 읽는다. 그 근거가 위의 8권 1장 문장이다. 그 해석을 받아들여도, 그 토양에서 자란 집 안의 정의는 비례를 품는다는 것이 8권 7·11장의 결론이다(주해 2).
그 모양을 정하는 것이 비례다. 그는 분배의 정의가 어떤 비례를 따라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무엇을 값어치로 치느냐에서 갈린다고 썼다. "민주주의자들은 자유를, 과두제 지지자들은 부를, 어떤 이들은 가문을, 귀족주의자들은 덕을 내세운다"(5권 3장). 그리고 이 틀을 부부에게도 그대로 썼다. 부부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한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한" 우애이고, 그런 우애에서는 정(情)도 비례에 맞아야 하며(8권 7장), 부부 사이의 정의는 "상대적인 탁월함"에 따른다(8권 11장). 우애가 끝내 바라는 것은 대등함이고, 비례는 대등하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의미에서" 대등함을 만들어 내는 방편이라는 뜻이다.
주해 2 · 「비례」는 무엇을 재는가, 그리고 부부(5권 3장 · 8권 7·11장)
-
풀이같은 '비례'라도 자유를 재면 민주정이, 부를 재면 과두정이, 덕을 재면 귀족정이 된다. "정의는 비례다"로 끝나는 말이 아니라, 비례를 따른다는 데서 다툼이 시작된다. 그가 비례로 규정한 것은 분배의 정의다. 손해를 바로잡는 정의는 "비례가 아니라 산술적인(not in the way of that proportion but of arithmetical)" 같음을 따른다고 같은 권에서 따로 썼다(Chase Book V Chapter VII).
-
맥락"우정에서는 순서가 정반대"라는 괄호는 대등한 친구 사이의 이상을 말한 것이고, 그 바로 앞뒤가 부부를 포함한 대등하지 않은 우애에서는 비례가 필요하다는 논의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5권 3장 · 8권 7장 우월한 우애 · 8권 7장 비례와 평등 · 8권 7장 순서 · 8권 11장
그러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던질 물음은 비례냐 반반이냐가 아니다. 무엇에 비례하느냐다. 그가 이 물음에 답하는 방식은 『정치학』 3권 12장의 피리 이야기에 가장 또렷하다. 함께 피리를 부는 악사들 가운데 가장 좋은 피리는 가문이 가장 좋은 사람에게 가지 않고 가장 잘 부는 사람에게 간다. 가문과 외모가 피리 솜씨보다 더 값진 자질이라 해도 그렇다. 그런 우월함은 "당면한 일과 관련이 있어야" 하는데 피리 부는 일과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나누는 것과 주장의 근거가 맞물려야 한다는 원리다. 그런데 그는 같은 장에서 재산의 몫을 지우지 않았다. 관직은 나라에 쓸모 있는 자질을 근거로 다퉈야 하므로 가문과 자립과 재산을 가진 이들이 관직을 두고 다투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했다. 나라는 노예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듯이 가난한 사람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이어지는 13장은 관직을 다투는 모든 이의 주장이 "어떤 면에서는 정당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판정하고, 첫 예로 부유한 이들을 든다. 한 가지에서 같은 사람이 모든 것에서 같은 것은 아니고, 한 가지에서 다른 사람이 모든 것에서 다른 것도 아니다. 재산은 재산이 관련된 몫에 대해서는 근거가 된다. 그것을 모든 몫으로 넓히는 순간 근거는 억지가 된다. 3권 9장은 그 억지가 어디서 오는지 짚었다. 사람들은 "자기 일에서는 잘못 판단"하고, 어떤 부분에서 옳은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는 전체에서 정의를 이루었다고 여긴다. 연봉이 스무 배라는 사실에서 집안일의 몫까지 곧장 끌어내려는 물음은, 그의 말로 하면 자기 일에서 판단하는 사람의 물음이다.
주해 3 · 피리와 재산 — 재산의 부분적 권리(『정치학』 3권 9·12·13장)
-
풀이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을 몫의 근거에서 빼지 않았다. 관직을 다투는 모든 이의 주장이 그렇듯, 나라에 재산이 필요하므로 재산을 가진 이의 주장도 관직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정당"하다. 그가 거부한 것은 그 주장이 "일반적으로", 곧 모든 몫에 대해 정당하다고 넓히는 일이다. 피리의 원리(주장의 근거는 나누는 것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와 13장의 판정(한 가지에서의 차이는 모든 것에서의 차이가 아니다)은 같은 원리의 두 면이다.
-
3권 9장의 동업 비유같은 문단은 "1미나를 낸 사람이 나머지 전부를 낸 사람과 똑같이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는 동업의 논리를 소개하고, 나라가 재산을 위한 동업이라면 그 논리가 맞겠지만 나라는 단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live well)" 위해 있다고 잇는다(다음 문단 p0188).
-
원문 표기원천 Ellis 영역 3556행 부근에 "[1283a]" 쪽 표지가 있다. 장 번호는 Ellis 장 표지를 따랐고, 표준 분장과의 대응은 쪽 표지로 확인했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3권 12장 피리 · 3권 12장 재산의 몫 · 3권 13장 한 가지와 모든 것 · 3권 13장 어떤 면에서는 정당 · 3권 9장
그 억지가 집 안에서 어떤 모양이 되는지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10장에서 보여 주었다. 부부 관계를 귀족정에, 남편이 모든 일에 군림하는 집을 과두정에 빗대고 이렇게 덧붙였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상속녀라는 이유로 통치권을 쥐기도 하는데, 이때의 통치는 덕에 의한 권리가 아니라 부와 권력에 의한 것이므로 과두정과 같다." 과두정의 표지는 다스리는 사람이 누구냐가 아니라 다스림의 근거가 부와 권력이라는 데 있다. 같은 장은 귀족정이 과두정으로 넘어가는 까닭을 다스리는 자들이 올바른 비례를 어기고 "부를 우상으로 삼는" 데서 찾았다. 과두정도 비례를 따른다. 그 잣대가 부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집 안의 분업을 마다한 것은 아니다. 부부는 "삶 전반을 위해" 함께 살고, 일은 곧바로 나뉘어 남편의 일과 아내의 일이 따로 있으며, 그 분업의 목적은 각자의 고유한 능력을 "공동의 자산"에 보태 서로 돕는 데 있다(8권 12장). 그는 분업을 긍정했고, 그 분업이 재산의 다스림으로 바뀌는 것을 막았다. 빗대어 읽으면, 물려받은 재산과 스스로 번 돈은 다르지만 다스림의 근거가 돈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연봉의 차이를 집안일의 몫에까지 그대로 넓히는 집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과두정이라 부른 구조에 한 걸음 들어선다.
주해 4 · 상속녀와 과두정(8권 10·12장 · 『정치학』 5권 1장)
-
맥락8권 10장의 귀족정 비유는 남편이 "올바른 권리에 따라 남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영역에서만" 다스리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니 이 장에서 상속녀의 다스림을 과두정이라 부른 까닭을 '아내가 다스렸다는 것'으로 읽으면 안 되고, 그렇다고 그가 남편의 우위를 버렸다고 읽어서도 안 된다. 문장이 드는 이유는 다스림의 근거가 덕이 아니라 부와 권력이라는 점이다. 그 '덕'의 자리에 처음부터 남편을 둔 한계는 주해 17.
-
정체와 가족의 대응같은 장에서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왕정에, 부부를 귀족정에, 형제를 금권정에, 가장이 없어 모두가 대등한 집을 민주정에 견주었다.
-
5권 1장과 맹자"한 가지 면에서 불평등한 자들이 모든 면에서 불평등하다고 가정"한다는 진단은 맹자의 "어찌 그중 하나를 가졌다고 해서 나머지 둘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주해 9)와 거의 같은 꼴의 문장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 것은 아니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8권 10장 상속녀 · 8권 12장 공동의 자산 · 『정치학』 5권 1장
이 원리를 부부의 분담에 바로 댄 곳이 8권 14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글쓴이의 논리를 이미 무대에 올려 두었다. 대등하지 않은 우애에서 더 유익한 쪽은 이렇게 말한다. "쓸모없는 사람은 똑같이 나누어 가져서는 안 된다. 우애의 결실이 행한 일에 비례하여 거두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애가 아니라 세금에 불과하다." 그는 이 주장이 "금전적 동업"에서 더 낸 사람이 더 받는 것을 우애에 대어 본 생각이라고 짚으면서도 내치지 않았다. 더 내놓은 쪽도, 더 궁핍한 쪽도 각자 더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다만 "'같은 것'을 더 많이 받아서는 안 된다. 뛰어난 사람은 더 많은 존경을 받아야 하고, 궁핍한 사람은 더 많은 이익을 얻어야 한다." 까닭은 한 문장이다. "아무도 모든 면에서 손해를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탁의 아리스토텔레스(AI)도 첫 대답에서 같은 장의 "존경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문장을 정확히 인용했지만, 그것을 가사 분담과 떼어 놓았다. 원전에서는 그 문장이 바로 분담의 답이다.
주해 5 · 「같은 것을 더 받아서는 안 된다」(8권 14장)
-
배경대등하지 않은 우애에서 각자 자기가 더 받아야 한다고 다툴 때 어떻게 하느냐는 장이다. 더 유익한 쪽의 생각은 "금전적 동업"에서 더 낸 사람이 더 받는 것을 우애에 대어 본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짚었다. 그는 그 주장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더 받을 것의 종류를 갈랐다.
-
나라의 예그는 이 원리를 정치 공동체에서 가져왔다. 공동체에 좋은 것을 내놓은 사람은 명예를 받는데, 공공에서 돈도 벌고 명예도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돈과 관련하여 손실을 본 사람에게는 명예를 주고" 선물로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돈을 준다.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다 가져가면 다른 쪽은 모든 면에서 덜 받는다.
-
원탁 대조원탁의 아리스토텔레스(AI)가 1턴에 인용한 "돈이나 선함과 관련하여 상대에게 이익을 준 사람에게는, 상대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존경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위 둘째 인용의 문장이고 문구는 원전과 맞는다. 다만 AI는 이 문장을 가사 분담과 떼어 놓았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8권 14장 첫 문장 · 더 유익한 쪽의 주장 · 같은 것을 더 받지 말라 · 돈과 명예 · 가능한 것을 요구한다
이 장의 깊은 뜻은 보답의 종류를 가르라는 데 있다. 존경은 베푼 쪽에, 이익은 모자란 쪽에 간다. 한 사람이 둘을 다 가져가면 다른 쪽은 모든 면에서 덜 받는 사람이 된다. 같은 장은 받은 쪽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갚으면 된다고 덧붙인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그가 돈으로 가족에게 더 내놓은 것은 존경으로 갚을 몫이다. 집안일을 덜 맡아서 생기는 시간과 쉼은 존경이 아니라 이익 쪽에 들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라면 이익은 그것이 모자란 쪽으로 더 가야 한다. 그러니 이 장에서 그가 집안일을 덜 맡을 근거가 나온다면 '더 벌어서'가 아니라 '지금 시간이 모자라서'여야 한다. 그때도 그는 존경에 더해 시간까지 받는 쪽이 되니, 그 시간은 다른 것으로 갚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경고한 '모든 면에서 덜 받는 사람'이 배우자 쪽에 생긴다.
왜 연봉으로 집안일을 곧장 잴 수 없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의 본성에서 실마리를 준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5장에 따르면 교환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 사이에서 생기지 않는다. 의사와 의사 사이에는 거래가 없고, 의사와 농부처럼 "서로 다르고 평등하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 그 다른 것들을 견주게 하려고 돈이 들어왔다. 그러나 사람들을 실제로 묶는 끈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 곧 수요이고, 돈은 합의로 그 수요를 대신할 뿐이다. 그는 "그렇게 크게 다른 것들이 실제로 비교 가능하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수요와 관련해서는 실용에 충분할 만큼 가깝게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그 근사는 서로의 수요가 값을 매기는 거래의 자리에서 성립하고, 여기서 연봉의 쓰임과 한계가 함께 드러난다. 8억 원과 4천만 원은 두 사람의 노동에 시장이 매긴 값이고, 시장의 일끼리 견주는 데는 쓸 만한 근사다. 그러나 끼니를 차리고 장을 보고 집의 일정을 챙기는 일은 그 집 안에서 사고팔리지 않으니 값이 매겨진 적이 없다. 값이 매겨진 쪽의 숫자로 값이 매겨지지 않은 쪽의 시간까지 나누면, 실용의 근사가 아니라 한쪽 저울만 쓰는 셈이 된다.
주해 6 · 돈은 노모스에서 왔다(5권 5장)
-
풀이돈은 다른 것들을 견주게 하는 합의의 척도이고, 사람들을 실제로 묶는 끈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모든 것을 견주게 한다고 하면서도, 크게 다른 것들이 참으로 같은 척도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수요와 관련해 실용에 필요한 만큼만 맞춘다고 선을 그었다. 근사가 서는 바탕은 실제로 오가는 수요다.
-
오늘에 비추어주해자의 생각으로는, 연봉은 이 '합의의 척도'가 시장에서 매긴 값이다. 두 사람의 시장 노동을 견주는 데 쓰이는 것은 그 척도의 본래 쓰임이다. 그 집 안에서 사고팔린 적 없는 집안일의 시간까지 그 값으로 나누면, 근사가 서는 바탕(서로 오가는 수요) 밖에서 척도를 쓰는 일이 된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5권 5장 의사와 농부 · 노미스마 · 크게 다른 것들
이 틀을 중세에 이어 받은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신학대전』 제2부 2편에서 정의를 다루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종 사이보다 "정의의 여지가 더 많다"고 했고, 그래서 둘 사이에는 나라의 정의와 구별되는 '가정의 정의'가 있다고 했다(57문 4절). 그리고 분배의 정의를 어기는 악덕에 이름을 붙였다. '사람을 가려 봄(respect of persons)'이다. 받을 이유와 상관없는 사정을 보고 몫을 주는 일인데, 그는 같은 사정이 어떤 일에는 자격이 되고 다른 일에는 되지 않는다는 예를 들었다. 혈연은 재산을 물려받을 자격은 되지만 교회의 직분을 맡을 자격은 되지 않는다(63문 1절). 부에 대해서는 더 직접적이다. 부자는 공동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므로 "존경받아야" 하지만, "단지 부를 이유로" 존경받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가려 보는 죄라고 했다(63문 3절). 혈연이 상속에는 자격이 되고 직분에는 되지 않듯, 이 사연에 빗대면 연봉은 생활비를 대는 자리에서는 자격이 되어도 저녁 설거지를 면제받을 자격은 되지 못한다.
주해 7 · 아퀴나스 — 가정의 정의와 「사람을 가려 봄」(『신학대전』 제2부 2편 57·61·63문)
-
풀이61문 2절에서 아퀴나스는 분배의 정의가 "귀족정에서는 덕에 따라, 과두정에서는 재산에 따라, 민주정에서는 자유에 따라" 사람의 자리를 잰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틀을 그대로 받았다. 그 위에서 63문은 분배의 정의를 어기는 악덕을 '사람을 가려 봄(respect of persons)'이라 하고, 몫을 받을 "원인"이 아닌 사정을 보고 주는 것이라 정의했다. 같은 사정이 한 일에는 자격이 되고 다른 일에는 되지 않는다는 1절의 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피리 이야기와 3권 13장의 판정을 중세의 말로 다시 세운 것이다. 3절도 부자를 존경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존경의 근거가 공동체에서 맡은 자리여야지 부 자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한계57문 4절은 아내를 남편에게 "속한" 존재로 둔 위에서 정의의 여지를 말한다. 휴담 지식 노트 「토마스 아퀴나스」도 학계가 그의 신분적 분업론("능력 차이가 신분·인격의 차등을 정당화한다")을 비판한다고 정리한다(노트 서술은 학계 해석이며, 이 글은 위 원문으로만 그의 논지를 적었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57문 4절 · 61문 1절 가족 안의 분배 · 61문 2절 덕·재산·자유 · 63문 1절 · 63문 3절
19세기의 존 스튜어트 밀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주석한 사람이 아니지만, 같은 물음을 근대의 부부에게 정면으로 대었다. 『여성의 종속』(1869) 2장에서 그는 "자연스러운 배치는 두 사람 사이의 권한 분할"이고 그 분할은 법이 미리 정할 수 없으며 두 사람의 능력과 적합성에 달려 있고 당사자들의 뜻에 따라 고칠 수 있다고 썼다. 그는 생계를 대는 쪽에 "더 영향력 있는 발언권"이 실리는 현실도 인정했다. 다만 그 불평등은 혼인법(law of marriage)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일반적 조건에서 온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가 출산과 어린 자녀의 양육에 더해 남편이 번 돈으로 집의 살림을 꾸리는 일까지 맡는다면, 그는 공동의 삶에 드는 몸과 마음의 수고에서 "공평한 몫뿐만 아니라 대개는 더 큰 몫"을 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밀도 다른 조건이 정의롭다면 아내가 소득을 보태는 것은 바람직한 관행이 아니라고 보았고, 그 원칙대로라면 집 밖의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기혼 여성 대다수에게 "실질적으로 금지될 것"이라고까지 썼다. 집안일의 무게를 정직하게 단 사람도 자기 시대의 분업은 넘지 못했다. 오늘의 사연에 밀이 보탤 것은 그 분업이 아니라, 생계를 대는 쪽의 무게는 사회의 조건에서 오고 집 안의 분할은 두 사람이 정하고 고친다는 구분이다.
주해 8 · 밀 — 합의로 나누는 권한, 무게를 단 살림(『여성의 종속』 2장, 1869)
-
배경밀은 이 장에서 혼인법이 남편에게 절대 권력을 주는 당대 영국의 제도를 비판한다. 그가 내놓은 대안이 합의에 따른 권한 분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주석한 글은 아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연 '부부 사이의 정의' 물음을 근대에 정면으로 받은 글이다.
-
한계그는 가족의 부양이 재산이 아니라 소득에 달린 집에서는 남편이 벌고 아내가 지출을 맡는 것이 "대개 가장 적절한 분업"이라 보았다. 같은 문단에서 독립된 재산이 없는 여성에게 소득을 올릴 '능력'은 존엄에 필수라고 했지만, 결혼한 여성은 살림과 양육을 첫 과업으로 고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그 원칙대로면 집 밖의 직업은 기혼 여성 대다수에게 실질적으로 금지될 것이라고 맺었다. 능력은 지키되 행사는 막은 셈이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권한의 분할 · 생계를 대는 쪽의 발언권 · 더 큰 몫 · 아내의 소득 활동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걷어 낼 것은 분명하다. 그의 귀족정 비유에서 '더 나은 쪽'은 처음부터 남편이었다(아래 「세 사람이 걷어 내야 할 것」). 그것을 걷어 내도 남는 원리는 셋이다. 집 안에도 정의가 있다. 그 정의는 비례를 품지만 비례의 근거는 나누는 것에 맞아야 한다. 더 내놓은 사람은 다른 종류의 것으로 보답받는다. 이 원리를 이번 사연에 대면 이렇다. 글쓴이의 연봉이 근거가 되는 몫은 분명히 있다. 생활비를 누가 얼마나 대는지, 큰 지출을 정할 때 그의 말에 얼마의 무게를 둘지, 그가 가족을 위해 쏟은 수고를 배우자가 얼마나 알아보고 고마워할지가 그렇다. 오늘 저녁 설거지를 누가 하느냐는 연봉과 관련이 없는 몫이다. 빗대어 읽으면, 그 몫을 연봉으로 정하는 것은 가문을 보고 피리를 나누는 일이다.
여기서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 '비례'를 연봉 비례로 곧장 읽는 것이다. 그가 부부 사이에 둔 잣대는 탁월함과 필요였다. 오늘의 말로 풀면, 각자가 그 집에서 실제로 해내는 일과 각자에게 모자란 것이다. 반대 방향의 잘못도 있다. 비례를 아예 걷어 내고 모든 것을 반반으로 맞추려는 것이다. 그는 우애가 "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빗대어 읽으면, 승진을 앞둔 몇 달 동안 그가 실제로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다면 그 철에 그가 집안일을 덜 맡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같은 결과라도 근거가 '더 벌어서'인지 '지금 할 수 없어서'인지에 따라 그 집의 질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탁월함에 따른 다스림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부에 따른 과두정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재물이라는 한 가지 척도로" — 맹자
같은 두 번째 문답에서 원탁의 맹자(AI)는 질문자가 기여의 척도를 밖에서 벌어 오는 재물에만 두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손추 하」 2장을 꺼냈다. 이 인용은 정확하다. 맹자는 거기서 "천하에는 보편적으로 존경받는 세 가지가 있으니, 작위가 하나요, 나이가 하나요, 덕이 하나"라 하고 이렇게 이었다. "조정에서는 작위보다 더한 것이 없고, 향당에서는 나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는 덕보다 더한 것이 없다. 어찌 그중 하나를 가졌다고 해서 나머지 둘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주해 9 · 천하의 세 존귀함과 하늘의 작위(「공손추 하」 2장 · 「고자 상」 16장)
-
풀이達尊의 達은 '두루 통한다'(주희 「達,通也」). 어느 한 사람이 정한 존귀함이 아니라 천하가 함께 높이는 것이다. 셋 가운데 어느 것도 버려지지 않는다. 문제는 하나로 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
배경제나라 왕이 맹자를 부르자 맹자가 병을 핑계로 가지 않고 경추(景丑)의 집에 묵었다. 경추가 신하의 예를 들어 따지자 맹자가 답한 대화이고, 증자의 말은 그 대답 중간, 세 존귀함을 꺼내기 바로 앞에 나온다. 본래는 작위를 가진 왕이 덕 있는 선비를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
후대의 해석주희는 "증자의 말은 덕을 두고 한 것이다. 지금 제왕은 작위만 가졌을 뿐이니 어찌 그것으로 나이와 덕을 업신여기겠는가(曾子之說,蓋以德言之也。今齊王但有爵耳,安得以此慢於齒德乎)"라고 풀고, 장 끝에 "임금은 높은 지위와 부귀를 중히 여기지 않고 덕을 귀히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을 어짊으로 삼는다(人君不以崇高富貴為重,而以貴德尊士為賢)"고 정리했다(필자 풀이).
-
오늘에 비추어빗대어 읽으면 연봉은 시장이 준 인작에 가깝다. 맹자의 말은 인작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인작을 들고 다른 자리의 존귀함을 깎지 말라는 것이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공손추 하」 2장 · 「고자 상」 16장 · 주희 『맹자집주』는 도서관 미수록(원천 대조)
이 구절의 깊은 뜻은 존귀함마다 으뜸인 자리가 따로 있다는 데 있다. 맹자는 작위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작위가 으뜸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가 막은 것은 조정의 잣대를 들고 향당과 학문의 자리까지 들어가는 일이다. 이 말은 제나라 왕이 부르자 병을 핑계로 가지 않은 맹자가, 신하의 예를 들어 따지는 경추에게 한 대답이다. 주희는 이 장을 "지금 제왕은 작위만 가졌을 뿐이니 어찌 그것으로 나이와 덕을 업신여기겠는가"라고 풀었다. 맹자는 다른 곳에서 공경대부의 벼슬을 '사람이 준 작위(人爵)'라 부르고 인의와 충신을 '하늘이 준 작위(天爵)'라 불렀다(「고자 상」 16장). 빗대어 읽으면 연봉은 시장이라는 조정에서 매긴 오늘의 인작에 가깝다. 그 자리에서는 으뜸일 수 있지만, 그 잣대 하나로 집 안의 다른 존귀함까지 깎을 수는 없다.
그러나 원탁의 맹자(AI)가 첫 대답에서 한 말, 집안일과 돈을 두고 다투는 것은 "공(功)의 크기만을 셈하여 뜻(志)을 저버리는 짓"이라는 말은 원전과 반대다. 그가 끌어온 "도에 맞지 않는다면 한 바구니의 밥이라도 남에게서 받을 수 없다"는 구절은 「등문공 하」 4장에 있다. 수레 수십 대를 거느리고 제후에게서 먹고 다니는 스승에게 제자 팽갱이 "선비가 하는 일 없이 먹는 것은 옳지 않다"고 따지자, 맹자가 공을 보고 먹이는 것이 옳다고 논증하는 장이다. 맹자는 먼저 분업을 말했다. 공을 통하게 하고 일을 바꾸지 않으면(通功易事) 농부에게는 곡식이 남고 여인에게는 베가 남는다. 통하게 하면 목수와 수레 만드는 이가 다 먹고산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효도하고 나가서 공경하며 선왕의 도를 지켜 후학을 기다리는 사람은 왜 먹이지 않느냐. 목수는 먹으려고 일하지만 군자도 그러냐고 팽갱이 되묻자 맹자는 동기를 묻지 말라고 했다. 기와를 깨고 벽에 함부로 칠을 하는 사람이 먹으려는 뜻으로 그런다면 먹이겠느냐. 팽갱이 아니라고 하자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당신은 뜻을 보고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공을 보고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非食志也,食功也)."
주해 10 · 「공을 보고 먹인다」(「등문공 하」 4장)
-
풀이功은 우리말 '공로'보다 좁고 단단하다. 실제로 이루어 상대에게 닿은 일이고, 그 일을 한 동기가 志다. 食는 '먹일 사'로 읽어 '먹여 살리다'다(주희 「食志食功之食,皆音嗣」).
-
入則孝는 누구의 일인가"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경하며 선왕의 도를 지켜 후학을 기다리는" 사람은 맹자가 변호하는 선비다. 入則孝는 선비의 덕행을 그린 말이지 집안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 글은 이 대목에서 원리(공의 범위를 좁히지 말라)만 가져온다.
-
배경맹자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는 대화다. 묻는 이는 제자 팽갱이고, 원탁의 맹자(AI)가 1턴에 인용한 "도에 맞지 않는다면 한 바구니의 밥이라도…"는 이 장 첫머리의 맹자 대답이다. AI는 그 구절로 "공의 크기만 셈하지 말라"는 결론을 냈지만 장의 결론은 반대로 食功이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등문공 하」 4장 通功易事 · 食志乎食功乎 · 食功也
功과 志의 구별은 분업 사회의 정의론이다. 志는 일하는 사람의 속마음이고, 功은 그 일이 실제로 상대에게 닿아 이룬 것이다. 분업이 이루어진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의 속마음을 다 알 수 없고 다 알 필요도 없다. 서로에게 닿은 일을 보고 서로를 먹인다. 맹자의 논증이 날카로운 것은 이 '공'의 범위에 있다. 팽갱은 목수가 깎은 나무처럼 손에 잡히는 것만 공으로 쳤다. 맹자가 변호한 사람은 집에 들어와 효도하고 나가서 공경하며(入則孝,出則悌) 선왕의 도를 지켜 후학을 기다리는 선비, 곧 손에 잡히는 물건을 내놓지 않는 사람이다. 맹자는 그의 일도 남에게 닿는 공이라고 보았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계산에서 빠진 공이었다.
이 장을 후대가 읽어 온 길은 오늘의 물음에 그대로 닿는다. 주희는 『맹자집주』에서 通功易事를 "사람들의 공을 통하게 하여 그 일을 서로 바꾸는 것"이라 풀고, 남는 곡식과 베는 "바꿀 데가 없어 쓸모없이 쌓여 있다(無所貿易,而積於無用)"고 했다. 그는 맹자의 논지를 한 줄로 정리했다. "내 쪽에서 말하면 본디 먹을 것을 구하지 않지만, 저쪽에서 말하면 무릇 공이 있는 이는 마땅히 먹여야 한다(自我而言,固不求食;自彼而言,凡有功者則當食之)." 그리고 장 끝에서 "이미 공을 먹인다고 했으니, 선비를 하는 일 없이 먹는 자로 여기는 것은 참으로 목수와 수레 만드는 이를 높이고 인의를 행하는 이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을 먹인다고 해 놓고 인의를 행하는 이를 빼면, 목수만 높이는 셈이 된다는 말이다.
조선의 다산은 이 通功易事를 경세의 말로 다시 읽었다. 『중용강의보』에서 그는 주희의 "백공을 오게 하면 공이 통하고 일이 바뀐다(來百工則通功易事)"를 받아, 기구가 편리해지면 적은 힘으로 곡식과 베가 넉넉해진다고 풀고는 조선의 현실을 적었다. 관장들이 목수와 대장장이를 부리면서 "품삯은 주지 않고 채찍질만 자주 한다(傭雇不酬,而鞭撻數及)." 그러니 장인은 자손에게 그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계한다. 값을 치르지 않은 공은 끝내 사라진다는 경고다. 『경세유표』 「정전론」에서는 농부를 장부에 올려 땅에 배치하고, 장부 밖의 사람들은 "각기 자기 직업에 종사하면서 농부와 공을 통하고 일을 바꾸어" 먹을 것을 넉넉히 한다고 썼다. 같은 글은 장인·상인과 함께 부녀자가 실과 삼을 다스려 옷을 대는 일을 꼽으며, 그런 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했다. 맹자의 교환 그림에서 농부의 곡식과 나란히 한 축을 이루던 '여인의 베'가 다산에게서는 백성의 생업을 짤 때 꼽아야 할 직분의 하나로 다시 섰다.
주해 11 · 通功易事가 걸어온 길 — 주희에서 다산으로(『맹자집주』 · 『맹자요의』 · 『중용강의보』 · 『경세유표』)
-
길의 모양맹자는 분업의 교환을 공(功)의 언어로 정당화했다. 주희는 그 교환이 막히면 넉넉한 것도 "쓸모없이 쌓인다"고 하여 교환의 쓸모를 짚고, 공을 알아보는 자리를 "저쪽", 곧 공을 입은 쪽에 두었다. 다산은 주희의 다른 주석(『중용장구』의 來百工)을 받아 공에 값을 치르지 않는 조선의 관행을 고발했고, 『경세유표』에서는 通功易事를 백성의 생업을 짜는 원리로 썼다. 그 직분의 목록에 부녀자의 길쌈(『주례』 구직의 嬪婦)이 있다.
-
『맹자요의』다산은 『맹자요의』의 이 장(「彭更問曰後車數十乘章」)에서 논지를 따로 다투지 않고, 墁을 주희의 '담벼락 꾸밈'이 아니라 흙손(鐵杇)의 이름이라고 바로잡는 데 그쳤다(「鏞案墁或作鏝。或作槾。或作㙢。皆鐵杇之名」). 그래서 이 장에 대한 다산의 후대 해석은 『맹자요의』가 아니라 『중용강의보』와 『경세유표』에서 찾았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주희 『맹자집주』·『중용장구』는 도서관 미수록(원천 대조) · 다산 『맹자요의』·『중용강의보』·『경세유표』 「정전론」은 도서관 미수록
맹자는 분업을 분명히 옹호했고, 그것은 글쓴이 편에 서는 근거이기도 하다. 누구나 손수 농사지어 먹어야 하고 물건값은 크기만 같으면 똑같이 매기자는 허행의 무리에게 그는 "사물의 고르지 않음은 사물의 본질적인 모습"이며, 값이 열 배, 백 배 차이 나는 것을 똑같이 만들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고 했다(「등문공 상」 4장). 같은 장에서 그는 옛말을 끌어와 "마음을 쓰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을 '천하의 보편적인 의'라 했다. 빗대어 읽으면, 맹자의 기준에서 두 사람의 연봉이 스무 배 다르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고, 승진을 앞둔 몇 달 한 사람이 바깥일에 몰리는 것도 공을 통하게 하고 일을 바꾸는 분업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만 맹자가 말한 것은 물건의 질에 따라 값이 다르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사람의 연봉에 대는 것은 어디까지나 빗댐이다.
주해 12 · 값은 열 배 백 배 다르다, 그리고 노동의 위계(「등문공 상」 4장)
-
화자「故曰」 뒤 네 구절은 맹자가 끌어온 옛말이다(주희 「此四句皆古語,而孟子引之也」). '천하의 보편적인 의(天下之通義)'라는 판정만 맹자의 말이다.
-
배경농가(農家) 허행의 제자가 된 진상과의 문답이다. 맹자는 허행이 쓰는 갓·솥·쟁기를 차례로 물어, 그것들을 모두 곡식과 바꾸어 쓴다는 답을 진상에게서 받아 낸 뒤 분업을 논증한다. 이 앞 문답은 맹자가 묻고 진상이 답한다(주희 「此語八反,皆孟子問而陳相對也」).
-
후대의 해석주희는 다스리는 이와 다스림을 받는 이의 교환을 "군자가 없으면 소인은 어지럽고, 소인이 없으면 군자는 굶주린다. 이로써 서로 바꾸니 바로 농부와 옹기장이·대장장이가 곡식과 기물을 바꾸는 것과 같아, 서로 돕는 것이지 서로 해치는 것이 아니다(君子無小人則饑,小人無君子則亂。以此相易,正猶農夫陶冶以粟與械器相易,乃所以相濟而非所以相病也)"라고 풀었다(필자 풀이). 분업의 교환을 '서로 도움'으로 읽은 것이 주희의 몫이고, 그 교환을 다스림의 위계로 굳힌 것이 이 구절의 한계다.
-
다산과 견주면다산 「전론」 5는 선비에게 농사·공상·주경야독·교육·실학의 길을 열어 주면서, 마음 쓰는 일이 먹을 자격이 되는 조건을 "농사를 돕는(以佐農)" 공에 두었다(주해 13). 「전론」은 맹자를 인용하지 않는다. 둘을 나란히 놓은 것은 주해자의 비교다.
맹자에게서 걷어 낼 것은 마음 쓰는 사람이 다스린다는 노동의 위계와, 아래에서 다룰 여성에 대한 그의 시대의 전제다. 그것을 걷어 내도 남는 원리가 있다. 몫은 공을 보고 준다. 그리고 공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 부정의다. 빗대어 읽으면, 집안일은 팽갱이 놓친 선비의 일과 한 가지 점에서 닮았다. 손에 잡히는 물건이나 시장의 값으로 남지 않지만 식구에게 곧장 닿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연봉의 셈 밖에 두는 것은 목수의 나무만 공으로 친 팽갱과 같은 모양의 잘못이 된다. 맹자가 入則孝로 그린 것은 선비의 덕행이지 집안일이 아니니, 이 닮음은 문구가 아니라 원리에서 온다. 주희의 말대로 공을 알아보는 자리는 공을 입은 쪽, 곧 먹여 주는 쪽에 있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내가 더 버니 내 몫을 셈해 달라'는 글쓴이의 물음은 내 쪽에서 하는 계산이다. 맹자와 주희의 물음은 저쪽에서 시작한다. 내가 입은 상대의 공은 무엇이고, 나는 그것을 먹이고 있는가. 반대로 잘못 적용하기 쉬운 지점도 있다. 공을 보고 먹인다는 말을 "집안일도 시급으로 환산해 정산하자"로 곧장 읽으면, 집안일을 다시 돈이라는 한 잣대에 올리게 된다. 맹자가 천하의 존귀함을 셋으로 둔 까닭을 생각하면, 공을 알아보는 일과 그것을 시장 값으로 바꾸는 일은 같지 않다.
하루를 열흘로 적는 장부 — 다산
원탁의 다산(AI)은 두 번째 문답에서 아리스토텔레스(AI)에게, 비례적 평등을 가정에 대입하면 가정이 '성과에 따른 등급제'가 된다고 반론했다. 첫 대답에서는 "계산기가 두드려지는 곳에서는" 우애도 인의의 싹도 자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원전의 다산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장부에 올린 사람이다.
「전론(田論)」은 한 집안의 비유로 시작한다. 땅 열 경(頃)에 아들이 열인 사람이 있는데 한 아들은 세 경을, 두 아들은 두 경씩을, 세 아들은 한 경씩을 받고 네 아들은 받지 못해 길에서 굶어 죽는다면 그를 좋은 부모라 하겠느냐. 다산은 임금과 수령이 백성의 부모라면 "그 재산을 고르게 마련해 주어 함께 살게(均制其產而竝活之)" 해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에 원칙이 선다. "농사짓는 사람은 땅을 얻고,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얻지 못하게 하라(使農者得田,不爲農者不得之)"(「전론」 2). 여전제(閭田制)는 이 원칙을 실현하는 장치였다. 서른 집 안팎을 한 여(閭)로 묶어 네 땅 내 땅의 경계 없이 함께 농사짓게 하고, 일한 날을 날마다 장부에 적었다가, 가을에 거둔 곡식에서 나라의 세금과 여장의 녹봉을 먼저 떼고 나머지를 그 날수대로 나눈다. "힘을 많이 쓴 사람은 곡식을 많이 얻고, 힘을 적게 쓴 사람은 곡식을 적게 얻는다"(「전론」 3).
주해 13 · 여전제의 장부(「전론」 1·2·3·5·6)
-
풀이注役은 일한 날을 장부에 적는 일이다. 장부의 단위는 날수지만 다산은 날을 기계적으로 세지 않았다. 남의 힘을 덜어 주고 공동의 수확을 키운 공이면 하루를 열흘로 적었다. 가중의 조건은 「以佐農」, 곧 공동의 농사를 도운 데 있다.
-
장부의 모양장부가 나누는 것은 한 마을(閭)의 수확이고, 오르는 노동은 들일이다. 나눔의 순서는 나라의 세금, 여장의 녹봉, 그리고 일한 날수다. 땅을 가졌다는 사실에 돌아가는 몫은 없다. 부부와 자식과 며느리의 날수는 장정 한 사람의 이름 아래 합산되어 그 집의 몫이 된다. 누구의 하루냐에 따라 값을 달리 적으라는 말은 없지만, 몫이 가장의 이름 아래 모인다는 것도 이 장부의 모양이다.
-
「전론」 6의 녹봉겸병한 집을 없앤 뒤에는 관리의 녹봉을 두텁게 하라는 대목이다. 다산의 몫의 차이는 맡은 일(여장·관리)에서 나오고, 땅을 쥔 것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
후대의 해석「전론」을 직접 풀이한 후대 주석은 휴담 원천데이터에 없다. 「전론」의 저작 연대는 원문에 없어 이 글에 적지 않았다.
날만 센 것도 아니다. 손가락이 여려 농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선비는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다산은 실제의 이치를 연구해 토질을 가리고 수리를 일으키며 기구를 만들어 노동력을 덜어 주고 심고 기르는 법을 가르쳐 "농사를 돕는(以佐農)" 사람이라면 그 공을 팔뚝 걷어붙이고 일하는 사람에게 견줄 수 없으니, "하루 일한 공로를 10일로 기록해 주고, 10일 일한 공로를 100일로 기록해 주어 곡식을 분배해 주면 된다"고 했다(「전론」 5). 공에 따라 무게를 다는 비례다. 무게를 받는 근거는 공동의 농사를 실제로 키운 공이고, '선비'라는 이름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 같은 글에서 그는 놀고먹는 선비를 두고 "어찌하여 남의 토지를 삼키고 남의 힘으로 먹고산단 말인가(吞人之土食人力哉)"라고 꾸짖었다.
이 대목은 맹자와 나란히 놓으면 뜻이 또렷해진다. 「전론」은 맹자를 인용하지 않고, 방향도 맹자와 엇갈린다. 맹자는 도를 지켜 후학을 기다리는 선비의 일을 공으로 쳐서 팽갱을 물리쳤다. 다산은 선비의 일 가운데 농사를 실제로 돕는 것을 공으로 쳤고, 손발을 놀리는 선비에게는 몫을 주지 않았다. 그 점에서 다산은 오히려 팽갱 쪽에 가깝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두 사람은 엇갈리면서도 한 점에서 만난다. 몫은 공을 보고 주고, 선비라는 이름만으로는 먹을 자격이 생기지 않는다. 맹자가 공의 범위를 넓혀 셈에서 빠진 일을 살렸다면, 다산은 그 범위를 단단히 해 놀고먹는 자리를 지웠다. 오늘의 집에는 둘 다 필요하다.
여기서 다산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두 사람이 나누는 것은 관직과 수확으로 다르니, 견주는 것은 재산을 대하는 태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이 관직을 다툴 근거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했다. 다산의 여전제에는 재산에 돌아가는 몫이 없다. 앞에서 본 나눔의 순서에 땅을 가졌다는 사실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균전제와 한전제가 농사짓지 않는 사람에게도 땅을 주어 "천하 사람들을 거느리고 놀고먹도록 가르친다"고 물리쳤고(「전론」 2), 사가(私家)가 수확의 절반을 가져가는 현실을 "사가는 크게 걸왕처럼 한다"고 하며 땅을 겸병한 집을 없애라고 했다(「전론」 6). 다산에게도 몫의 차이는 있었다. 여장은 녹봉을 받고, 나라의 관리에게는 녹봉을 두텁게 주라고 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맡은 일에서 나왔지 쥐고 있는 것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산의 토지론은 한 가지 꼴로 굳지 않았다. 「전론」 2에서 시행할 수 없다고 한 정전을 그는 『경세유표』 「정전론」에서 "성인의 경법"으로 다시 세웠다. 제도는 달라도, 몫을 실제로 일하는 사람에게 두고 나머지 직분을 通功易事로 잇는 원리는 두 글에 함께 있다. 두 글의 선후는 휴담 원천 자료로 확인하지 못해, 이 글은 두 글이 서로를 비추는 데까지만 읽는다.
주해 14 · 「전론」과 「정전론」 — 다산의 두 토지론(『경세유표』 권5)
-
풀이「전론」 2의 다산은 정전·균전·한전을 모두 물리치고 여전제를 내놓았다. 『경세유표』의 다산은 정전을 성인의 경법으로 다시 세우되, 정전을 '사람 수대로 땅을 똑같이 나누는 제도'로 읽은 통설을 물리쳤다. 두 글은 결론의 제도가 다르지만, 몫을 실제로 일하는 사람에게 두고 나머지 직분은 通功易事로 잇는다는 원리를 함께 쓴다. 「전론」 1의 '열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정전론」 3의 '열 자식을 둔 부모'로 다시 나온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앞에서는 땅을 고르게 나누는 부모였고, 뒤에서는 자식마다 맞는 일을 나눠 주는 부모다.
-
확인 못 함두 글의 정확한 저작 연대와, 다산이 「전론」의 여전제를 버렸는지 보완했는지에 대한 학계의 판단은 원천데이터와 노트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본문은 두 글의 원문이 보여 주는 것만 적었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전론」 2 · 『경세유표』 「정전론」은 도서관 미수록
그는 이 원리를 자기 집 아들들에게도 댔다.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시골에 살면서 채소밭을 가꾸지 않는 것은 천하의 버림받은 사람"이라 하고, 자신이 집에 있었다면 뽕나무 수백 그루와 배나무·능금나무를 가꾸었을 것이라며 아욱과 배추와 무를 구역을 나누어 심는 법까지 적었다(「기양아」). 다만 1810년 아들 학연에게 준 가계에서 누에치기를 권하며 "부녀자들로 하여금 놀고먹지 않게 하니 이 또한 좋은 방법"이라고 쓴 데서 보듯, 그의 집안 분업에도 남녀의 자리는 따로 있었다(「시학연가계」).
주해 15 · 선비의 채소밭(「기양아」 · 「시학연가계」)
-
풀이「전론」 5가 선비에게 요구한 것("손발을 놀리며 남의 힘으로 먹지 말라")을 다산은 자기 아들들에게 채소밭과 뽕나무로 요구했다. 같은 해(1810)에 하피첩을 만들었다. 다만 누에치기는 "부녀자들"의 일로 적었고, 같은 가계는 의식의 근원으로 "부녀자들이 길쌈에 힘쓰는 것(婦女勤於紡績)"을 꼽았다. 집 안의 분업에도 남녀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
원탁 대조원탁 3턴의 다산(AI)이 「서로의 우환을 나누고 선처를 의논하는 법」이라며 끌어온 대목은 같은 권 「기양아」의 다른 문단이다. 이 글은 그 대목을 쓰지 않았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기양아」 · 「시학연가계」 뽕나무
글쓴이의 야근 사정을 다산에게 빗대어 읽으면, 일한 날수대로 나눈다는 원리로는 승진을 앞둔 몇 달 그가 더 쏟은 날도 셈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실제 장부에 오른 것은 들일이고 장인과 상인은 물건으로 바꾸었으니(「전론」 5), 장부가 아니라 원리를 대어 본 것이다. 하루를 열흘로 적는 가중은 다르다. 「전론」 5의 가중은 개인이 많이 번 일에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공동 경작을 도와 남의 힘을 덜어 준 공에 주는 것이었다. 그의 야근이 그런 가중을 받으려면 그 일이 집 전체의 살림과 두 사람의 짐을 실제로 덜어 주어야 하고, 그것은 연봉의 액수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다산의 장부를 오늘의 집에 이어 쓰려면 그 모양을 함께 읽어야 한다. 하나, 단위는 집이다. 「전론」 3의 예시에서 "부부와 자식과 며느리"가 일한 날은 장정 한 사람의 이름 아래 합산되어 그 집의 몫이 된다. 「전론」이 가르는 것은 집과 집 사이이고, 집 안에서 부부가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전론」은 말이 없다. 둘, 오른 것은 들일뿐이다. 끼니와 길쌈과 돌봄은 그 밖에 있었다. 『경세유표』가 부녀자의 길쌈을 공을 통하는 직분으로 꼽았어도, 집 안의 날들을 적는 장부는 끝내 만들지 않았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다산의 원리를 오늘의 집에 이어 쓰는 길은 그가 비워 둔 칸을 채우는 것이다. 집안일의 날수를 함께 적는 순간, 연봉의 크기 쪽으로만 기울던 저울은 다시 맞춰야 한다.
주해자가 보기에는 다산 자신의 삶에도 한쪽으로 기운 셈이 있었다. 1801년부터 18년 동안 그는 유배지에서 경전에 마음을 쏟아 경학 저술만 230권을 남겼다(「자찬묘지명」). 그 18년은 그가 고른 것이 아니었다. 흑산도의 형 정약전에게 보낸 답장에서 그는, 올해 다섯 차례 대사면이 있어 탐관오리와 살인강도까지 풀려나지 않은 이가 없는데 이름이 계(啓)에 오른 사람은 거론조차 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돌아갈 길이 막혀 있다는 말이다. 그 뒤에 그는 남은 처지를 이렇게 셈했다. 이제 돌아가도 "집안은 네 벽만 쓸쓸히 서 있고 양식은 설 전에 이미 떨어졌으며, 늙은 아내는 춥고 배고플" 것이다. 하늘이 다산(茶山)을 그의 별장으로 삼아 주어 한 해가 다 가도록 아이 울음도 아내 탄식도 들리지 않으니, 이곳을 떠나려는 것은 어리석다. "이는 억지로 지어내는 말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계산해 보면 참으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고 적었다(「답중씨」). 막힌 길 앞에서 유배지를 학문의 복으로 셈한 이 편지의 맞은편에 아내의 날들이 있었다. 1801년 겨울 과천 주막에서 어린 농아를 안고 그를 배웅한 사람도, 그 아이가 세 돌 만에 죽기까지 아이의 말을 편지로 전한 사람도 아내였다(「농아광지」). 아내 홍씨는 아홉 남매를 낳아 그 가운데 여섯을 잃었다(「자찬묘지명」). 아내가 보내온, 시집올 때 입은 붉은 치마로 그는 1810년 두 아들에게 줄 훈계를 써서 '하피첩'을 만들고, 그것이 "두 어버이의" 덕을 잇게 하기를 바랐다(「제하피첩」). 그리고 1836년, 혼인 예순 해를 사흘 앞두고 이렇게 썼다. "쪼갰다가 다시 합쳤으니 참으로 우리의 모습이니, 두 쪽 바가지를 남겨 두어 자손들에게 전해주세"(「회근시」).
주해 16 · 다산의 18년(「자찬묘지명」 · 「답중씨」 · 「농아광지」 · 「제하피첩」 · 「회근시」 · 『예기』 「혼의」)
-
「답중씨」의 앞뒤편지는 도인법과 육경·사서·악서·『주역』 이야기를 차례로 한 뒤, 이 사면 이야기로 맺는다. 「名在啓中者 不可擧論」의 계(啓)는 죄를 청하는 신하들의 글(대계)로 읽힌다(주해자의 풀이). 다산은 그 일을 "방비를 엄격히 하려 해서가 아니라 넓고 큰 마음으로 서로를 잊었기 때문(此非欲嚴隄防而然。乃浩然相忘耳)"이라 비꼬았다. 이 풀이의 정황 근거로,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1810년 아들의 호소로 고향에 보내라는 명이 내렸으나 "당시 대계가 있어 의금부가 막았다(因有當時臺啓 禁府格之)"고 적었다. 그 일이 이 편지의 사면과 같은 해의 일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유배지를 복으로 셈하는 대목은 사면 이야기 뒤, 같은 문단 안에 온다. 그러니 이 편지는 돌아가지 않기를 고른 사람의 글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그 자리를 견디는 셈법이다. 다산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사람의 본성이 본래 유약하기 때문"이라 하고 그것이 본심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편지의 연도는 원문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
연대회근(回巹)은 혼인 60주년이다. 다산은 15세인 1776년(병신)에 혼인했으므로(「자찬묘지명」 「十五娶豐山洪氏」) 이 시의 병신년은 1836년이다. 하피첩의 연대 1810년은 첩을 쓴 때다. 아내가 치마를 보낸 해는 원문에 없다.
-
풀이하피첩은 아내의 천과 남편의 글이 한 권에 든 물건이고, 다산은 그것을 "두 어버이의" 덕택이라 불렀다. 회근시의 두 바가지(雙瓢)는 혼례의 합근 잔을 가리킨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혼의」가 말한 '높고 낮음을 같이함'과 다산이 받아들인 예법(주해 17) 사이의 간격이 이 두 바가지에 함께 담겨 있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자찬묘지명」 · 「답중씨」 · 「농아광지」 · 「제하피첩」 · 「회근시」 · 『예기』는 도서관 미수록
혼례에서 신랑과 신부는 박 하나를 쪼갠 두 바가지로 술을 나눠 마신다. 『예기』 「혼의」는 이 합근(合巹)의 뜻을 "몸을 합하고 높고 낮음을 같이하여 친하게 하려는 것(所以合體、同尊卑,以親之也)"이라 했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다산의 두 바가지에는 그 예의 뜻 위에 18년의 생이별과 재회가 겹쳐 있다. 강제로 기운 세월을 메운 것은 다른 쪽의 날들이었고, 그는 예순 해 뒤 그 두 쪽을 하나의 박이라 불렀다. 그 박이 정말 '높고 낮음을 같이하는' 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산이 받아들인 예법 자체가 다른 대답을 한다.
세 사람이 걷어 내야 할 것
셋을 편하게 읽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귀족정 비유에서 다스리는 '더 나은 쪽'은 처음부터 남편이고, 『정치학』 1권 12장은 그 까닭을 "남성은 자연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라 했다. 아퀴나스도 아내를 남편에게 "속한" 존재로 둔 위에서 부부 사이의 정의를 말했다. 맹자는 "순종을 올바름으로 삼는 것은 아내와 첩의 도리"라 했고, 주희는 "여자는 남을 따르는 존재"라고 주를 달았다(「등문공 하」 2장). 다산은 『상례사전』에서 동서끼리의 호칭을 따지며, 『예기』 「교특생」의 "부인은 작위가 없어 남편의 작위를 따르고, 남편의 나이로 자리를 정한다"는 원칙을 받아 "부인은 작위도 없고 나이로 대접받지도 않으며, 남편의 명에 따라 귀해지고 남편의 나이에 따라 자리가 정해진다"고 판정했다. 맹자가 꼽은 세 존귀함 가운데 작위와 나이를 아내에게서 떼어 남편에게 맡긴 예법이다. 같은 「교특생」은 신랑과 신부가 한 희생을 함께 먹는 것을 "높고 낮음을 같이한다"고 풀고는 곧바로 "그러므로 부인은 작위가 없다"로 이어 간다. 동아시아 예의 '한 몸'은 아내의 독립된 몫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다산은 아들에게 준 가계에서 빚을 함부로 내는 아내를 경계하며 "부녀자는 깨진 그릇과 같아서 물이 새는 구멍이 많다"고까지 썼다(「시학연가계」). 맹자가 "마음을 쓰는 사람은 남을 다스린다"는 노동의 위계를 천하의 보편적인 의로 세운 것도, 밀이 아내의 소득 활동을 바람직한 관행이 아니라고 본 것도 같은 줄에 놓인다.
주해 17 · 세 사람의 시대 한계(『정치학』 1권 12장 · 「등문공 하」 2장 · 『예기』 「교특생」 → 『상례사전』 · 「시학연가계」)
- 이 말은 권세에 아첨하는 공손연·장의를 깎아내리는 비유로 나왔다. 주희는 "여자는 남을 따르는 존재이므로 순종을 바른 도로 삼는다(女子從人,以順為正道也)"고 주를 달았다. 다산은 『맹자요의』에서 "예경에는 '남편을 어기지 말라'는 글이 없으니 맹자가 본 것은 다른 판본(禮經無毋違夫子之文。孟子所見者別本也)"이라고 문헌만 짚었을 뿐, 순종의 도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 화자「婦人無爵無齒。貴以夫命。坐以夫齒」는 다산의 안설 안에 있지만, 그 원칙은 『예기』 「교특생」의 「婦人無爵,從夫之爵,坐以夫之齒」를 받은 것이다. 다산은 이 원칙을 근거로, 동서 사이의 호칭은 아내 자신의 나이가 아니라 남편의 항렬을 따라야 한다고 판정했다(앞 문단의 마융·정현·공영달 등은 서로 다른 설을 내고, 다산은 그 사이에서 판정한다).
-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정치학』 1권 12장 · 「등문공 하」 2장 · 「시학연가계」 깨진 그릇 · 『상례사전』·『맹자요의』·『예기』는 도서관 미수록
이 전제들을 걷어 내도 세 사람의 비례론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원리가 저절로 그 전제를 걸러 내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남성의 우월을 다스림과 관련된 자연적 우월로 보았다. 그에게 남편이 다스리는 것은 피리를 잘 부는 사람에게 피리를 주는 일과 같은 꼴이었다. 그 전제가 무너지는 것은 그의 원리 안에서가 아니라, 성별이 다스리는 능력을 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오늘의 독자가 그 원리를 다시 대어 볼 때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그때 그의 원리는 그의 결론과 다른 쪽을 가리킨다. 나누는 것과 관련된 우월만 근거가 된다면, 관련이 없다고 드러난 성별은 근거에서 빠져야 한다. 맹자의 교환 그림에서 여인의 베는 처음부터 농부의 곡식과 나란한 공이었다. 그 공을 내놓은 사람을 "순종을 올바름으로 삼는" 자리에 두는 근거는 공을 보고 먹인다는 원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남편의 이름 아래 아내의 날수를 묻어 두는 장부도, 몫은 해낸 일에서 나온다는 다산 자신의 원리로 다시 적을 수 있다.
세 관점을 정리하면
휴담의 지식 그래프 「지혜의 별자리」에서 세 사람을 함께 잇는 개념은 아홉이다. 그 가운데 이 물음에 닿는 정의·덕·노동·부의 줄에서 세 사람은 겹치기도 하고 갈리기도 한다. 셋 다 비례를 받아들였다. 재산을 대하는 자리에서는 갈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산이 관련된 몫에는 근거가 된다고 인정하고, 그것을 모든 몫으로 넓히는 일을 과두정이라 불렀다. 맹자는 물건값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존귀함으로 나머지 둘을 업신여기는 일을 막았다. 다산은 여전제에서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몫의 근거에서 뺐다. 맹자의 通功易事가 주희의 집주를 거쳐 다산의 경세론으로 이어졌으니 동아시아 쪽 두 사람의 만남은 계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크게 다른 것들이 실제로 비교 가능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과 맹자의 "사물의 고르지 않음은 사물의 본모습"이라는 말은, 교환이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는 같은 관찰에서 나왔다.
주해 18 · 별자리의 다리
- 지혜의 별자리휴담 지식 그래프(도서관
/cerebro)에서 아리스토텔레스·맹자·다산을 함께 잇는 bridge 개념은 국가·정의·마음·덕·앎·지혜·이성·이치·사랑·교육·배움·노동·부의 아홉이다. '노동·부' 다리에 걸린 마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적 정의」·「부는 최고선이 아니다」, 맹자의 「분공론」·「勞心者治人」, 다산의 「여전제」가 있다. 그래프가 가리킨 대목은 모두 원전에서 다시 확인했다. - 교환의 두 그림아리스토텔레스의 의사와 농부(5권 5장), 맹자의 농부와 길쌈하는 여인과 목수(「등문공 하」 4장·「등문공 상」 4장)는 모두 서로 다른 일 사이에서 교환이 생긴다는 그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다른 것들을 돈이 '근사하게' 견주게 한다고 했고, 맹자는 그 차이를 똑같이 만들면 천하가 어지럽다고 했다. 이 둘을 한 줄에 놓은 것은 주해자의 비교이고, 두 원전이 서로를 안 것은 아니다.
- 재산을 대하는 세 자리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3권 12~13장 — 관련된 몫에는 정당, 일반적으로는 아님) · 맹자(「등문공 상」 4장 — 물건값의 차이 · 「공손추 하」 2장 — 한 존귀함으로 다른 존귀함을 깎지 않음) · 다산(「전론」 2·3·6 — 농사짓지 않는 이에게 땅을 주지 않음, 일한 날수로만 나눔, 겸병한 집을 없앰). 맹자 쪽은 사람의 재산이 아니라 물건값을 말한 대목이라, 재산에 대는 것은 빗댐이다.
- 동아시아의 계보맹자 → 주희(『맹자집주』·『중용장구』) → 다산(『중용강의보』·『경세유표』)으로 通功易事가 이어진 길은 주해 11.
| 비례를 인정한 곳 | 비례의 근거 | 재산·값의 차이 | 물리친 것 | |
|---|---|---|---|---|
| 아리스토텔레스 | 분배의 정의 · 부부의 우애와 정의 | 나누는 것과 관련된 탁월함, 그리고 필요 | 관련된 몫(관직)에는 근거가 된다 | 재산의 우위를 모든 몫으로 넓히는 과두정 |
| 맹자 | 값의 차이 · 공을 보고 먹임 | 상대에게 실제로 닿은 공, 자리마다 다른 존귀함 | 물건값이 다른 것은 사물의 본모습 | 하나의 존귀함으로 나머지를 업신여김 |
| 다산 | 날수대로 나눔 · 하루를 열흘로 적는 가중 | 공동의 살림을 실제로 키운 공, 맡은 일 | (여전제) 쥐고 있다는 것은 몫의 근거가 아니다 | 땅을 쥐고 남의 힘으로 먹음 |
다시 그 질문으로
연봉이 스무 배인 사람은 집안일을 반드시 반반 해야 하는가. 세 원전은 기계적인 반반을 요구하지 않는다. 셋 다 분업을 인정했고, 공이 큰 쪽을 더 적어 주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동시에 셋 가운데 누구도 "더 버니까 덜 한다"는 근거를 받아 주지 않는다. 주해자가 세 사람의 원리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세우면 네 문장이 된다.
첫째, 집안일은 공이다. 맹자는 공을 보고 먹이라 하면서 손에 잡히는 물건만 공으로 치는 생각을 물리쳤다. 다산은 일한 날수대로 나누는 제도를 세웠지만 집 안의 날들은 거기 넣지 않았다. 앞의 것은 원리이고, 뒤의 것은 그 원리가 아직 닿지 못한 빈칸이다. 연봉은 시장이 값을 매겨 눈에 보이고, 집안일은 값이 매겨지지 않아 보이지 않는다. 분담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공을 먼저 적는 데서 시작한다.
둘째, 보답은 종류를 갈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나 선함으로 더 내놓은 사람은 존경을 더 받고, 궁핍한 사람은 이익을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더 버는 사람에게 돌아갈 정당한 몫은 배우자의 인정과 존중, 그리고 그가 번 돈이 공동의 자산이 되어 두 사람이 함께 누리는 살림이다. 집안일을 덜 맡아 얻는 시간과 쉼은 이익 쪽에 들고, 이익은 그것이 모자란 쪽으로 가야 한다. 한쪽이 존경과 이익을 다 가져가면 상대는 "모든 면에서" 덜 받는 사람이 되고, 그런 우애는 깨진다고 그는 장 첫머리에 적었다.
셋째, 잣대는 나누는 것에 맞춘다. 피리는 잘 부는 사람에게, 관직은 나라에 쓸모 있는 자질에, 혈연은 상속에 맞춘다. 연봉은 생활비와 큰 지출을 정하는 자리에서 무게를 가질 수 있지만, 오늘 저녁 누가 설거지하느냐를 정하는 잣대는 되지 못한다. 그 몫의 잣대는 누가 지금 할 수 있느냐와 누구에게 무엇이 모자라느냐다. 다산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묻게 한다. 많이 쥐고 있다는 것과 많이 해낸다는 것은 같지 않다. 빗대어 말하면, 쌓인 돈의 크기가 집 안의 몫을 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집은 다산이 꾸짖은 쥔 자의 논리에 가까워진다.
넷째, 기울기는 한 철의 것으로 두고, 근거와 기한을 말로 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혜택을 받은 쪽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갚으면 된다고 하며, 우애는 엄격히 갚아야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근대의 밀은 부부의 권한 분할이 두 사람의 능력과 적합성에 달려 있고 당사자들의 뜻으로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승진을 앞둔 몇 달 그가 집에 있을 수 없다면 그는 그 철에 배우자에게서 시간을 받는 쪽이 되고, 받은 쪽은 능력껏 다른 것으로 갚는다. 그 철에 분담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은 이 원리 안에 있다. 기울기가 부정의로 바뀌는 지점은 그 크기보다 근거와 기한에 있다. '지금 할 수 없어서'라는 근거와 '이 철이 끝날 때까지'라는 기한이 빠진 채 '내가 더 버니까'로 굳어 버린 기울기가 문제다.
주해자의 판단은 이렇다. 글쓴이가 승진을 앞둔 몇 달 동안 집안일을 덜 맡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단 세 조건이 붙는다. 근거가 연봉이 아니라 그 철에 실제로 집에 있을 수 없는 사정이어야 하고, 기간과 범위를 배우자와 말로 합의해야 하며, 그동안 배우자가 더 떠맡는 날들을 적어 두었다가 다른 것으로 갚아야 한다. 그 '다른 것'에는 인정과 감사가 먼저 들어가고, 그가 번 돈으로 집안일의 일부를 덜어 내는 길도 들어갈 수 있다. 주해자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공동의 자산을 두 사람의 짐을 덜어 내는 데 쓰는 일이어서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돈으로 덜어 낼 수 있는 것은 집안일의 일부뿐이다. 끼니를 차리는 노동은 살 수 있어도 식구의 하루를 헤아리는 마음의 수고는 사기 어렵다. 반대로 "8억을 버는 사람이니 상대가 집안일을 더 하는 것이 정의"라는 결론으로 가면, 그 집은 세 현자가 각자의 말로 막은 자리, 한 잣대의 우위를 모든 몫으로 넓히는 자리에 선다. 그를 나무란 댓글들이 옳았던 것은 이 대목에서다. 그러나 그 비판이 그의 야근 사정까지 지운 것이었다면, 그것은 다산 편에 서지 못한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연봉 차이가 스무 배든 두 배든, 집의 분담을 두고 마음이 상한 이들이 자기 집에 대어 볼 물음을 세 현자의 원리로 적고, 마지막 물음에는 밀을 보탠다. 우리 집의 분담은 무엇에 비례하는가, 그 잣대는 나누는 일과 관련이 있는가(아리스토텔레스). 우리 집 셈에서 빠진 공은 무엇이고, 나는 상대의 공을 먹이고 있는가(맹자와 주희). 우리 집의 몫은 해낸 일에서 나오는가, 쥐고 있는 것에서 나오는가(다산). 지금의 기울기는 지금 가능한 것에 맞춘 한 철의 것인가, 우리는 그 근거와 기한을 말로 정했는가(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한 것', 그리고 근대의 밀).
원탁의 맹자(AI)는 덜 버는 쪽이 천대받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원전의 맹자가 남긴 물음은 그보다 넓다. 어찌 그중 하나를 가졌다고 해서 나머지 둘을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원탁 대화의 원전 대조
이 글의 출발점이 된 원탁 대화(사랑방 공개본)에서 AI 현자들이 원전을 끌어 쓴 곳을 대조했다. 바로잡을 것은 다음과 같다.
- 아리스토텔레스(AI) 『정치학』 인용(2턴): "제가 『정치학』에서 언급했듯, 가정 관리에서 남편과 아내는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서로를 대우해야 합니다" — 원전과 다르다. 『정치학』 1권 12장(1259a~b)은 남편이 아내를 자유 국가의 시민처럼 다스려야 한다는 한쪽 방향의 말이고, "남성은 자연적으로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AI)의 「적용 범위를 구분해야」와 다산(AI)의 「비례는 공적 영역에만」(2턴): 아리스토텔레스(AI)는 "「비례적 평등」의 적용 범위를 정밀하게 구분해야 합니다"라 했고, 다산(AI)은 "그대가 말한 비례적 평등은 공적 영역의 기여에 대해서는 타당할지 모르나, 가정이라는 사적 공동체에 그대로 대입하기엔 위험합니다"라 했다. 앞의 말은 범위를 가르자는 데서 멈추고, 뒤의 말은 비례를 공적 영역에 한정한다. 어느 쪽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7장(1158b)은 부부를 한쪽이 우월한 우애로 분류해 비례를 요구하고, 11장(1161a)은 부부 사이의 정의가 상대적 탁월함에 따른다고 하며, 12장 끝(1162a)은 아내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정의의 물음으로 놓는다.
- 아리스토텔레스(AI) "부부 사이의 우애는 경제적 동업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동업은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유용성의 우애'이지만, 부부의 우애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함께 삶을 꾸려가는 '도덕적 성품에 기반한 우애'이기 때문입니다"(1턴): 8권 12장(1162a)은 부부의 우애가 유용함과 즐거움을 함께 지니고, 두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덕에도 기초한다고 한다(this Friendship is thought to combine the profitable and the pleasurable: it will be also based upon virtue if they are good people). 유용성을 빼지 않았고, 덕은 조건이 붙은 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AI) "훗날 학자들은 … 풀이하기도 하더군요"(1턴): 정의에서는 비례가, 우애에서는 양적 평등이 먼저라는 말은 후대의 풀이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문장이다(8권 7장, 1158b).
- 맹자(AI) "어찌 공(功)의 크기만을 셈하여 뜻(志)을 저버리는 짓이 아니겠습니까"(1턴): 그가 함께 인용한 「등문공 하」 4장의 결론과 반대다. 원문은 "뜻을 보고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공을 보고 먹여 살린다(非食志也,食功也)"로 끝난다.
- 다산(AI) "높일 때는 같이 높이고 낮출 때는 같이 낮추어야(隆宜同隆 降宜同降)"(1·2턴): 실제 구절이다. 그러나 『상례사전』 권12의 안설에서, 남편이 남의 후사가 되었을 때 아내의 상복 등급이 남편을 따라 함께 오르내려야 한다고 한 대목이다. 부부의 분담 원리를 말한 것이 아니다.
출처
원전 (휴담 원천데이터의 원문과 국역으로 대조. 파일 경로·문단 id 는 「원전대조표_v1.5」. 인용 블록의 우리말은 휴담 국역이고 고친 곳에 「필자 다듬음」, 국역이 없거나 쓰지 못한 곳에 「필자 풀이」를 달았다. 본문과 주해 속 괄호 한문의 우리말은 휴담 국역을 참고해 필자가 풀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3장(1131a) · 5장(1133a
b) · 8권 1장(1155a) · 7장(1158b) · 10장(1160b1161a) · 11장(1161a) · 12장(1162a) · 14장(1163a~b) — 원문은 휴담 원천데이터의 영역본(Chase), 국역은 휴담 국역. 장 번호는 표준(Bekker) 분장 기준이며, Chase 영역에서 5권 3장은 Book V Chapter VI, 5권 5장은 Chapter VIII, 8권 7장은 Book VIII Chapter VIII에 해당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권 12장(1259a
b) · 3권 9장(1280ab) · 1213장(1282b1283a) · 5권 1장(1301a) — 원문은 영역본(Ellis), 국역은 휴담 국역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제2부 2편(II-II), 57문 4절 · 61문 1·2절 · 63문 1·3절 — 원문은 영역본(Gutenberg #18755), 국역은 휴담 국역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1869) 2장 — 원문(Gutenberg #27083)과 휴담 도서관 국역
- 『맹자』 「공손추 하」 2장 · 「등문공 상」 4장 · 「등문공 하」 2장·4장 · 「고자 상」 16장 — 원문과 휴담 국역
- 주희, 『맹자집주』 「공손추 하」 2장 · 「등문공 상」 4장 · 「등문공 하」 2장·4장, 『중용장구』 20장 주(다산 인용) — 『사서집주』 원문
- 정약용, 『여유당전서』 시문집 권7 「회근시」(1836) · 권11 「전론」 1·2·3·5·6 · 권14 「제하피첩」(1810) · 권16 「자찬묘지명」 · 권17 「농아광지」 · 권18 「시학연가계」 · 권20 「답중씨」 · 권21 「기양아」 · 경집 권4 『중용강의보』 · 경집 권5 『맹자요의』 · 예집 『상례사전』 권12·13 · 정법집 『경세유표』 권5 「정전론」 1·3
- 『예기』 「교특생」 · 「혼의」 — 휴담 원천데이터 미수록. 공개 원문 위키문헌(郊特牲 · 昏義)로 확인
휴담 지식 자료
- 저자 지식 노트: 「필리아(우애) 우선론 — 정의에 앞서는 우애」 · 「토마스 아퀴나스 — 이성·신앙과 통치의 계보」 · 「정약용 — 예(禮), 원전에서」
- 지혜의 별자리: 아리스토텔레스·맹자·다산을 함께 잇는 bridge 개념 9개 가운데 정의 · 덕 · 노동·부
실마리: 뉴스1, 「"내 연봉이 아내의 20배, 집안일 반반 맞나"…」, 2026년 10월 30일 (기사)
원탁 대화: 지혜의 원탁 「공정한 분담이란 무엇인가」(아리스토텔레스·맹자·다산), 2026년 11월 1일 (사랑방 공개본)
휴담 도서관에서 읽기
인용한 구절을 휴담 도서관에서 그 단락으로 바로 여는 링크다. 도서관 문단 번호는 원천데이터 번호와 다를 수 있어 도서관 사본에서 원문으로 다시 찾았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 5권 3장 — 비례의 기준펼치기
- 5권 5장 — 의사와 농부펼치기
- 5권 5장 — 노미스마펼치기
- 5권 5장 — 크게 다른 것들펼치기
- 8권 1장 — 우정과 정의펼치기
- 8권 7장 — 한쪽이 우월한 우애펼치기
- 8권 7장 — 비례와 어떤 의미의 평등펼치기
- 8권 7장 — 정의와 우정의 순서펼치기
- 8권 10장 — 부부는 귀족정, 상속녀는 과두정펼치기
- 8권 11장 — 상대적 탁월함펼치기
- 8권 12장 — 공동의 자산펼치기
- 8권 12장 끝 — 아내와 어떻게 살 것인가펼치기
- 8권 14장 — 우애가 깨지는 때펼치기
- 8권 14장 — 더 유익한 쪽의 주장펼치기
- 8권 14장 — 같은 것을 더 받지 말라펼치기
- 8권 14장 — 돈과 명예펼치기
- 8권 14장 — 가능한 것을 요구한다펼치기
- 『정치학』 1권 12장펼치기
- 『정치학』 3권 9장펼치기
- 『정치학』 3권 12장 — 피리펼치기
- 『정치학』 3권 12장 — 재산의 몫펼치기
- 『정치학』 3권 13장 — 한 가지와 모든 것펼치기
- 『정치학』 3권 13장 — 어떤 면에서는 정당펼치기
- 『정치학』 5권 1장펼치기
- 『신학대전』 제2부 2편 57문 4절 — 가정의 정의펼치기
- 61문 1절 — 가족 안의 분배펼치기
- 61문 2절 — 덕·재산·자유펼치기
- 63문 1절 — 사람을 가려 봄펼치기
- 63문 3절 — 부를 이유로 높임펼치기
- 『여성의 종속』 2장 — 권한의 분할펼치기
- 2장 — 생계를 대는 쪽의 발언권펼치기
- 2장 — 더 큰 몫펼치기
- 2장 — 아내의 소득 활동펼치기
- 『맹자』 「공손추 하」 2장 — 達尊三펼치기
- 「등문공 상」 4장 — 勞心者治人펼치기
- 「등문공 상」 4장 — 物之不齊펼치기
- 「등문공 하」 2장 — 妾婦之道펼치기
- 「등문공 하」 4장 — 通功易事펼치기
- 「등문공 하」 4장 — 食志乎食功乎펼치기
- 「등문공 하」 4장 — 食功也펼치기
- 「고자 상」 16장 — 天爵·人爵펼치기
- 주희 『맹자집주』 「공손추 하」 2장 · 「등문공 상」 4장 · 「등문공 하」 2·4장 · 『중용장구』 20장 주도서관 미수록(원천 대조)
- 『여유당전서』 「회근시」펼치기
- 「전론」 1펼치기
- 「전론」 2펼치기
- 「전론」 3펼치기
- 「전론」 5펼치기
- 「전론」 6펼치기
- 「제하피첩」펼치기
- 「자찬묘지명」펼치기
- 「농아광지」펼치기
- 「시학연가계」 — 깨진 그릇펼치기
- 「시학연가계」 — 뽕나무와 누에펼치기
- 「답중씨」펼치기
- 「기양아」펼치기
- 다산 『맹자요의』·『중용강의보』·『상례사전』·『경세유표』 「정전론」도서관 미수록
- 『예기』 「교특생」·「혼의」도서관 미수록(위키문헌 링크는 출처 절)
원탁에서 현자들이 한 말은 각 현자의 원전을 바탕으로 한 AI의 응답이며 실제 인물의 말이 아닙니다. 이 글의 원전 인용은 휴담 원천데이터의 원문과 대조했고(『예기』는 공개 원문), 국역을 고친 곳에는 「필자 다듬음」을 달았습니다. 사연은 언론 보도를 요약했고 글쓴이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더하지 않았습니다.